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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아요. 제가 들고 있는 칼로 사람 안 찔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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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이퍼북 2022. 4. 27. 0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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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창1:27-28)

최근 저희 동네 한강 나들목에 맹견 2마리를 데리고 다니는 청년이 있습니다. 두 번을 마주쳤는데, 입마개도 하지 않고 대형견을 데리고 산책을 하더군요. 처음 봤을 땐 나들목 근처 횡단보도였습니다. 일부러 쳐다봤는데 절 함께 쳐다보다가 눈을 피하더군요. 두 번째 본 건 나들목 산책길이었습니다. 어린 아이들과 어르신들이 다니는 길이고 한강과 이어지는 하천이다보니 개 옆으로 지나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고요.

길에서 식칼을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옆에 다가 올까요? "괜찮아요. 전 이걸로 안 찔러요." 누가 그 말을 믿을까요? 누군가 못보고 지나가다가 살짝 베이거나 찔리면 "아. 찌를 마음이 없었는데 못보시고 찔리셨네요" 라고 하고 끝날 일일까요?

나쁜짓을 하는 사람도 나쁜 사람이지만 나쁜짓을 하지 않고도 남을 두렵게 하는 사람이 더 나쁜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나쁜 마음을 먹게 되면 그 두려움 이상의 나쁜짓을 할만한 사람이거든요. 네가 두려워해도 난 상관 없어 라고 하는 게 이미 남에게 해를 입히고 있는 것이니까요.

20대 초반에 1층에서 키우던 집주인의 진돗개에게 고기를 주다가 손을 물려 구멍이 났습니다. 눌러보니 하얀 지방이 몽글몽글 튀어 나오더군요. 고통을 참으며 밀어넣고 집주인에게 전화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했는데 죄송하다는 말도 없이 그냥 전화를 끊었습니다. 정말 순둥이 개였고 평소에 친했던 개였습니다.

사람은 상황에 따라 바뀝니다. 개는 상황에 따라 사람을 죽일 수도 있습니다. 큰 개는 자랑이 아니라 흉기에요. 그걸 자랑하고 다니는 것이지.

입마개를 하지 않으면 벌금형에 처하는 법이 있으면 무엇하나요? 버젓이 대형견들이 돌아다녀도, 그걸 경찰이 봐도 놔두는데요. 길을 걷는데 쾅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찻길에서 차끼리 부딛혀 사고가 났습니다. 바로 옆이 파출소였고 앞에 경찰 두 분이 나와계셨는데, 그걸 봐도 가보지 않고 하던 이야기 하다가 파출소로 들어가더군요.

공권력은 서비스업으로 전락해버렸고, 민원이 법보다 중요해서 사람들 앞에 굽신거리게 변한 나라. 법을 지키지 않아도 큰 사고가 나기 전까진 자기 앞가림이 더 걱정이 된 공권력. 잡으면 잡다가 과잉진압이라서 문제가 되고, 놔두면 놔둬서 문제가 되니 너도 나도 내 마음대로 해도 되는 시대를 아픈 마음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런 말 하면 독재정권 시절의 경찰 이야기 꺼내면서 그렇게 되는 게 괜찮냐는 논리를 펼치며 극단적으로 대치상황을 만들기만 할 뿐 고민과 성찰은 서로 해보지 않으려는, 서로 마음이 닫히고 상처받은 시대입니다.

동물보호법으로 동물의 권익(?)은 올라가고 사람의 가치는 떨어지는, 공산주의 사상인 유물사상에 비롯되어 사람도 자연의 일부분으로 동물이나 사람이나 똑같은 위치에 놓으려는 사회적 흐름에 그저 감정적 사랑만을 대입해서 지켜야 할 것과 보호해야 할 것의 가치도 구분하지 못하고 똑같은 자연을 훼손한다면 자연의 일부인 사람도 훼손되는 것이 당연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개가 어린 아이에게 짖어도 멀리서 그걸 보며 흐믓한 미소로 걸어오는 견주들도 많다고 합니다. 어떤 글에는 자기가 아는 사람이 자기의 컴플렉스를 맹견을 통해 해소하려고 하는데 어린 아이들나 사람들이 개가 짖거나 물려고 하는 것에 놀라 울기라도 하는 날에는 집에 가서 잘했다고 특식을 준다고 하네요.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법 앞에서 유지되는 질서가 파괴되기 때문에 결국 모든 것이 작동하지 않게 됩니다. 칼은 그걸 든 당사자의 결정에 움직이기라도 하지, 칼보다 더 위험한 짐승을 사랑이니 보호니 하는 말로 포장하지 말아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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