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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와의 교제가 즐거운 그리스도인(?)

신앙

by 페이퍼북 2021. 3. 24.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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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신자와의 결혼.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백성과 통혼했다는 것은 타락의 절정에 다다랐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예요. 이방민족과 통혼이라는 것은 타락의 절정입니다.

통혼을 하게 되면 먼저 그들과 통혼하지 말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정면으로 어기는 행위가 되는 거죠. 명령을 어기는 것, 그리고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며 하나님의 언약만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통혼을 하게 됨으로 불가능해져 버립니다. 언약 백성이 언약을 떠나는 죄를 짓게 되는 거죠. 명령을 어기고 언약을 떠나고, 그러면 진멸당하게 됩니다.

오늘날도 불신자와의 통혼은 엄중한 죄에 해당합니다. 이 점을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너무 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불신자와의 결혼, 또 강단에서도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쉽지 않아졌죠. 왜냐하면 성도님들 중에서도 불신자와 결혼한 사람들이 많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목사님들이 참 민망해집니다. 하지만 잘못된 거니까 말씀을 드리는 거예요. 성경에 그렇게 되어있기 때문에 말씀을 드리는 겁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교회)이 이방민족들과 통혼을 하다가 박살이 났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백성들(교회)이 불신자들과 통혼을 합니다.

이게 왜 위험한 일인지 아십니까? 명백히 다른 두 세계관이 있어요, 두 사상이 있습니다. 그것을 타협하고 섞어버리는 거에요. 그러면 불신자가 하나님 백성 쪽으로 오게 될까요, 하나님 백성이 불신자 쪽으로 가게 될까요? 당연히 기독교 세계관은 절대로 섞일 수 없는 건데, 조금 섞여 버렸으니까 이것은 가짜가 되는 거예요. 언약에 조그만 다른 것도 들어오면 안 되는데, 복음에는 조금만 달라져도 다른 복음이 되는데 조금 섞어버리면 세속화되어버리는 거죠. 다. 른. 복. 음.

어차피 불신자들의 사상과 세계관은 상관이 없어요. 절대 진리가 없으니까. 그러니까 그들은 그대로 지키는 거예요. 오직 진리 외에는 다 가짜입니다.

오직 복음 외에는 다 가짠데, 적당히 타협하면 무엇이 망가집니까? 비진리가 망가집니까? 비진리는 원래 망가진 것이니까 진리가 망가지는 것이죠. 결국 언약을 버리고 타협합니다. 복음을 버리고 타협하게 돼요. 예수 그리스도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버리게 됩니다. 그렇게 복음을 바꾸지 않으면 그 배우자와 정신적인 공유를 서로 할 수가 없게 돼요. 그럼 둘 중 하나예요. 내가 세속화되던가, 저 사람이 복음 듣고 변화되던가. 이 영적 전쟁을 계속하는 거죠.

제가 지금 이혼하라는 거 절대 아니에요. 이혼하면 안 되죠. 처음부터 그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되는데 했으니, 이제 세속화되지 말고 복음을 전해야 하죠. 그런데 세속화되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정신적 공유가 불신자인 배우자와 자연스럽게 일어난다, 그렇다면 내 정신이 기독교 정신이 아니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저렇게 가나안 백성과 오랫동안 잘 살 수 있었을까요? 언약을 버렸기 때문에 잘 살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을 버렸기 때문에.

우상도 섬기고 하나님도 섬기고, 그랬더니 “야. 나 좀 더 섬겨, 날 섬기는 건 맞는데, 나를 더 섬겨줬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십니까? “너희가 나를 버렸다”라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사무엘아 저들이 너를 버린 것이 아니라 나를 버렸다. 내가 저들의 왕이었는데, 저들이 나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각기 자기의 소견대로 옳은 대로 행하였다. 그리고 저 우상신들을 섬기면서 가나안 족속과 함께 통혼하였다”라고 질책하시는 겁니다.

“3 또 그들과 혼인하지도 말지니 네 딸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들의 딸도 네 며느리로 삼지 말 것은 4 그가(음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가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신7:3-4)

불신자와의 교제.

저는 단지 불신자와의 결혼만을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에요. 제가 왜 불신자의 결혼이 잘못됐느냐, 첫 번째는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이고요, 또 하나는 기독교 복음이 섞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은 결혼이 아니라도 친구들 중에,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 중에 불신자가 있다, 그들과 아주 깊은 얘기를 잘 나눈다? 둘 다 불신자 거나 둘 다 성도입니다. 그런데 불신자가 성도 일리는 없을 것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사람이 불신자입니다. 아니면 진멸당하기 직전의 타락한 백성 정도로 보시면 됩니다.

불신자와 싸우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는 싸우고 전도하기 위해서 만나세요.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기 위해 만나시고, 그리스도의 세계관이 어떠한 것인지를 나타나기 위해 만나십시오. 여러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끔.

“야. 나는 저 친구와 놀면 제일 재미있어”. 도대체 뭐가 재밌습니까? 어떤 게 재밌습니까? 만약에 그 친구와 놀았는데 재밌다면 하나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 아닐 거예요. 다 세속적인 것, 다 정욕으로 인한 것. 공유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단순히 결혼생활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화를 엄격하게 경계하고 있는 것입니다.

“14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원문: 잘못된 짝)를 함께 메지 말라 의(성도)와 불법(불신자)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둠이 어찌 사귀며 15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후6:14-16상)

빛과 어둠이 사귀다(교제하다)는 있을 수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어둠이 사라집니다. 내가 갔는데 여전히 어두움이 있어요. 그러면 내가 빛이 아니라는 겁니다. 그리스도와 우상이 어떻게 조화를 이룹니까? 그런데 오늘날에는 조화를 이루고 있죠? 그래서 다른 예수라고 하는 겁니다.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함께 나눠 가지고 영생을 공유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성전(우리 몸, 우리의 영혼)이 어찌 우상과 일치가 되겠습니까?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이 엄중한 경고를 버렸던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도 버렸고요.

이스라엘의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은 다음 세대의 실패까지 예견된 행위였어요. 오늘날도 온전히 믿음의 가정을 이루지 못하면 자녀들의 신앙교육은 그만큼 어려워지게 됩니다. 아버지는 신앙 가운데에서 가르쳤는데, 불신자 어머니는 “야. 너희 아빠가 이야기 한 그거 아니야”. 그래서 사사기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통혼을 하다 보니까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고, 여호와가 누구신지도 알지 못하는 일이 발생되는 겁니다.

우리는 목숨이 허락되는 한 세속 사상과 끊임없이 싸움을 해야 합니다. 전쟁은 타협으로 끝나지 않아요. 싸워 이겨야 끝납니다. 타협으로 평화가 오지 않습니다. 다 거짓된 평화입니다. 평화는 평화의 왕이신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제대로 마련할 때 오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 분만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그 분만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 수 있어요. 그런데 예수님과의 평강을 버리고 세상을 화친한다고요? 그것은 절대로 평강을, 위로를 얻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허락된 전쟁을 여호와를 의지함으로 이기시길 바랍니다. 다른 말로는 자기를 부인함으로 -내가 십자가에 못 박혀서 나의 생각과 의와 모든 내 육적인 욕망으로부터 나오는 것들이 죽어질 때- 그때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가장 활발하게 통치를 하실 것이고, 그럴 때에 점점 이겨가게 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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